캐릭터 몰입에 최적화된 소시민의 전형 ‘월터’
주인공 ‘월터 미티’에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평범하지만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잡지사 ‘라이프’ 한 직장에서 사진 현상 관리사로 16년째 일해온 월터는 ‘라이프’지 폐간을 앞두고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다.
전설적인 사진가가 넘겨준 마지막호의 표지 사진을 잃어버렸다는 표면적인 귀책 사유가 있긴 하지만, 결국 사진 현상이라는 업무 자체가 디지털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에 최우선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냉혹한 현실에 버림받은 신세가 되버릴 위험에 처한 ‘월터’는 자신의 인생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가 좋아했던 ‘상상’을 통해 깨닫기 시작한다.
현실은 ‘상상’으로 상상은 ‘현실’로
월터에게 상상은 현실에 갇혀버린 자신을 해방시켜 주는 도구이다. 그 안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현실은 조직에서 쓸모가 없어져 버린 녹슨 톱니바퀴 신세였다.
스스로도 상상을 현실의 도피행각 쯤으로 여겼던 월터는 잃어버린 마지막호의 표지 사진을 찾아 어쩌면 직장 마지막 미션이 될 수도 있는 모험을 떠나게 되면서 직장에서 상상으로만 하던 일들이 눈앞에 닥친 현실을 해쳐나갈 수 있는 영감이 됨을 깨닫게 된다.
월터의 상상이 그러하듯, 우리의 상상은 때론 이상적인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이어주는 도구가 된다. 마치 어떤 일들에는 무수한 상상력들이 잠재되어 있어 그 가능성을 깨워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경이로운 과정을 그 어떤 것이 대체가능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대체불가한 ‘삶의 정수’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그 기술적 잣대로 누군가가 걸어온 삶의 전반에 대해 이해하고 평가할 수 없다. 어떤 일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우리는 삶을 통해 그 일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사라져가는 일들이 생길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해야 하지만 적어도 그 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살아오고 또 삶의 의미를 찾아왔던 과정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평범해 보였던 월터 미티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멋진 여운을 남기게 해준 이 영화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