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은 끝이 없고, 편리함을 누리고 싶은 인간의 욕구도 마찬가지이다. IT분야는 그 니즈를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시장이며 그 판도에 따라 빠르게 생기고 사라지는 IT제품들로 인해 가끔은 ‘아, 그 제품은 왜 갑자기 사라져 버렸지?’ 라던가 ‘이 제품은 계속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한번쯤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때 혁신적인 기술로 시대를 풍미했던 IT 제품들이 있었다. 출시 당시 소비자와 전문가들의 찬사가 이어지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인기를 누리던 제품들이 종지부를 찍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참고로 전문가나 특정 기관에 한정되는 제품은 제외하고 대중적으로 한번쯤은 사용하거나 관심이 있었던 제품들 중 5개를 선정해 보았다.
1. 넷북 (Netbook)
넷북은 2000년대 중반 저전력 소형 프로세서 기술이 발전하여 유의미한 성능을 보여주자 등장한 휴대용 컴퓨터이다. 당시에도 노트북 시장이 호황이었지만 여전히 크고 무거운 이동식 컴퓨터는 들고 다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부분이 존재했다.
넷북은 그 틈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나온 제품으로 노트북에 비해 슬림한 디자인과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게,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50-60만원대)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작은 크기와 저렴한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 성능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고, 저전력 프로세싱 기술이 발전하면서 노트북 또한 더 얇고 가벼워지면서 넷북의 장점은 점점 더 희석되었다. 더군다나 비슷한 가격대에 더 좋은 성능과 편의성을 제공하는 태블릿PC가 등장하면서 간신히 명목을 유지하던 넷북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고 노트북 시장으로 다시 편입되었다.
참고로 넷북이 시장에서 사장되던 시기인 2015년에 애플도 초슬림 보급형 12인치 뉴맥북(macbook)을 출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판매율 저조로 3세대를 끝으로 단종시키며 시장의 변화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흑역사를 남기고 말았다. 흥미로운 점은 뉴맥북의 호흡기를 완전히 떼버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건 자사의 맥북에어와 아이패드였다는 것이다.
- 출시시기 : 2007년 – 2013년
- 특징 : 저전력, 휴대용이성, 저렴한 가격 등
- 한계 : 부족한 성능, 태블릿PC의 등장
- 대체제품 : 태블릿PC, 노트북
2. MP3 플레이어
MP3는 실패라고 하기에는 아쉬울만큼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한 시대를 주름잡은 음원 기술 혁신의 아이콘으로 평가 받은 제품이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의 발전으로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빠르게 전환되던 시기에 카세트 테이프와 CD 시장을 끝장낼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한 제품이었다.
이는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반강제적으로 물리적인 음반을 디지털 음원으로 대체 발매하게 하는 대표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 제품으로 인해 성행했던 불법 MP3 공유 제재를 위한 저작권법의 개정으로 현재 스트리밍 시장의 시초가 되었다.
이런 저작권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혁신 없이 외형에만 치중하여 출시되는 제품들이 차츰 경쟁력을 잃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팟에서 아이폰에 이르는 애플의 혁신적인 제품의 출시로 인해 휴대용 음향기기를 따로 소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점차 파이가 줄어들며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의 과도기적 역할을 한 제품으로 기록되며 자취를 감추었다.
- 출시시기 : 2000년 – 2010년
- 특징 : 음원의 무제한 사용(불법), 초소형 디자인, 뛰어난 음질 등
- 한계 : 저작권 문제, 스마트폰의 등장
- 대체제품 : 스마트폰
3. 자동차 내비게이션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제품 출시된 후, 차량을 운행하면 필수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제품이었다. 바로 전 시대(90년대 초반)까지는 자차로 목적지를 이동할때 지도를 보고 움직여야 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만큼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위성을 활용한 GPS 기술로 현재 위치와 목적지까지의 빠른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은 시대에 혁신이라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외장형에서 차량 내장형으로 제품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어쩌면 대체재가 없을 거라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GPS가 기본 탑재된 스마트폰이 출시 되면서 기류는 빠르게 바뀌었다. 항상 지니고 다니는 휴대폰이 탑재한 내비게이션은 차량내에 탑재 되어 있는 것과 본질적인 격차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기존 차에 탑재된 내비게이션은 기술이 ‘자동차’에 한정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반면, 휴대폰 내비게이션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맞춰져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활용한다면 오늘 나의 일정을 미리 계획하고 동선 등을 미리 입력하면 자동차에 탑승했을 때 별다른 조작 없이 자동으로 바로 다음 목적지로 안내하거나, 내 목적지를 타인에게 쉽게 공유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기능이 차량을 변경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해도 초기화 되지 않고 기존과 동일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본질적인 차이다.
해당 기술은 오늘날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로 대변된다. 이 플랫폼은 AI 기술과 결합하여 스마트 모빌리티의 비전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차량용 내비게이션의 경우 아직까지도 옵션 형태로 제공되고 있지만 단언컨데 스마트폰과 연동되지 않는 현재의 내비게이션은 조만간 사라질 것으로 확신한다.
- 출시시기 : 2000년 – 현재
- 특징 : GPS를 활용한 실시간 길안내
- 한계 : 자동차에 한정된 기능, 사용자 맞춤 서비스 부재
- 대체제품 :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
4. 3D TV
2000년대 후반 영화관에서 3D 화면으로 입체적인 관람이 가능한 영화들이 상영되면서, 3D 컨텐츠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졌다. 이듬해부터 가정에서도 3D 시청이 가능한 TV가 출시되었다. 이는 일반적인 2D 영상을 편광방식을 통해 입체적으로 볼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이었는데 시청할때 편광 안경을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했다.
출시 초반에는 신선하게 느껴지던 기술에 반짝 관심을 끌었지만, UHD 고화질 디스플레이의 출시와 더불어 멀미, 안경 착용의 번거로움 등으로 인해 그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는 기술 발전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례로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본질(편의성, 건강 등)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면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2010년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이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3D TV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3D 편광 기술은 일부 분야(영화관)에 한해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가정용 3D TV는 단종의 수순을 겪어야 했다.
- 출시시기 : 2010년 – 2015년
- 특징 : 일반 화면을 3D 입체 화면으로 보여주는 편광 기술
- 한계 : 안경 착용의 불편함과 멀미, 어지럼증 등의 건강 이슈, VR, AR기기 등장
- 대체제품 : 없음
5. 전동휠
전동으로 움직이는 바퀴를 서서 탑승하는 개인용 이동수단(세그웨이)로 내장된 자이로스코프 기술로 균형을 잡아주며 전자식으로 이동이 가능한 제품이다. 혁신적인 작동 방식으로 인해 새로운 레저 용품으로 각광 받으며 2010년대 초반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 제품에 명확한 한계가 있었는데 바로 ‘안전’이었다. 제품 특성상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자이로스코프와 자신의 균형감각으로만 제어가 가능한 제품이 대부분이었고, 이 기술을 주도한 중국 제조사들의 제품 결함(발열, 화재 등)이 매일 같이 터져나왔다. 결국 많은 나라에서 이 제품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의 경우도 공공장소에서 이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 금지되었다.
이런 이유로 전동휠 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되었으며 2010년대 중반부터 세그웨이 시장을 전동휠보다 사용하기 쉬운 전동 킥보드에게 내주게 되었다. 하지만 전동 킥보드 역시 ‘안전’ 문제에 자유롭지 않으며, 이동수단으로서의 규제 등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 출시시기 : 2010년 – 현재
- 특징 : 자이로스코프와 전기 배터리를 활용한 전동 이동장치
- 한계 : 안전문제, 제품 결함 이슈
- 대체제품 : 전동킥보드, 전동휠 개선 모델(핸들 방식)
결국 미래 기술과 시장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이다.
위 5가지 제품의 실패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기술의 혁신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제품이 내 삶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또한 신기술은 많은 시행착오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므로 결국 지속가능한 혁신은 그 문제를 해결함에 있을 것이다.
한 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꽤 많은 논쟁이 발생했던 걸로 기억한다. 가령 ‘종이책은 사라질 것이다.’ 라던가 ‘가상화폐가 기존 화폐를 대체할 것이다.’ 라는 주제 등으로 말이다. 이 논쟁은 현재 진행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렇다할 결론없이 종이책이나 기존 화폐가 아직까지 그 영역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때, 사람은 기술의 인력에 온전히 따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앞으로도 우리가 기술을 판단하고 시장을 예측하는데 있어 중요한 ‘사람 중심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임에 있어 흔들릴 이유가 없으며, 편리한 삶을 지속해 나가는 데에도 큰 지침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본다.